서양에 성 씨는 그들의 조상의 직업을 나타낸다. 베이커 씨는 빵집 주인이고 슈마허 schumacher 씨는 구두공, 스미스 씨는 대장장이나 금속 세공업자이다. 그중 금세공 일을 하던 사람들을 골드스미스 goldsmith 라고 불렀다. 이 골드스미스 씨가 근대 은행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금이 주요한 화폐 수단이었다. 물건을 사고팔 때도 금을 주고받곤 했다. 그러나 금덩어리를 들고 다닐 수 없어 평상시에는 금세공업자에게 맡겨두었다. 금세공업자는 진짜 금인지 아닌지도 알고, 무게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금을 맡긴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종이쪽지로 된 보관증을 한 장 받았다. 이것을 ‘골드스미스의 노트’라고 불렀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금으로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금세공업자를 찾아가 금을 찾아온다는 것이 귀찮았다. 그래서 물건을 판 사람에게 금을 넘겨주는 대신 보관증을 주면서 대신 찾아가라고 한 것이다. 금을 받을 사람도 그 보관증을 믿었기에 금 대신 보관증만으로도 거래가 성립됐다. 이후 보관증이 자연스럽게 화폐 구실을 하게 됐다.
이후 머리 좋은 금세공업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금을 맡겨 두고 보관증만으로 거래를 하다 보니 직접 금을 찾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매일 금을 찾으러 오는 것도 아니고 찾으러 온다 해도 한꺼번에 모든 사람들이 다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금보다 많은 보관증을 발행해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금세공업자들의 생각이 현대의 은행에도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은행에서 말하는 지급준비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은행도 고객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실제로 고객이 예금한 돈의 10%도 갖고 있지 않다.
금세공업자들이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종이쪽지 한 장으로 높은 이자 수익을 올리며 돈을 불려 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근대적인 은행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초기 은행가들 중에는 금세공업자 출신이 상당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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